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잡 것

의지박약

호 님 2019. 12. 2. 17:38

의지박약도 병인 걸까. 일만 잔뜩 벌려놓고는 끝맺는 일이 좀처럼 없다. 몇 달 전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당시의 다짐도, 2주에 한편 글을 꼭 쓰겠다는 다짐도, 월에 1회는 꼭 일기를 쓰자던 다짐도 어쩌면 어떤 계기가 있어서 먹었던 마음이렸건만, 결국은 또 하나하나 포기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월간 일기마저 손을 놓아버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. 어렸을 적 그토록 쓰기 싫어하던 방학 일기는 고새 잊고 기어코 내 손으로 어른일기를 시작하고, 또 이렇게 놔버린 것은 어쩌면 어렸을 적부터 가지고 있던 나의 병이 이제는 만성이 되어 골병이 들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. 관계가 그토록 중요하다더니 그 안정감을 팽하고 스스로 불안정한 관계를 택한 것도 어쩌면 이 몸뚱이에 남겨진 골병을 탓해야 하는 것일지도. 좀처럼 끝맺는 일이 쉽지가 않다.
요 몇일 전엔가, 드라마 같은 건 질색이라고 생각하던 내가 무슨 바람이 들어서 '동백꽃 필 무렵'이라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. 몰입도가 굉장해서 나는 마치 도착선이 보이기 시작하는 마라토너의 마음이 이랬을까 싶을 정도로 단 3일 동안 20화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. 이 드라마를 미친 듯이 보다가 든 생각이 바로 이거다. 의지박약이라고 하는 건 다 흥미니 재미니 하는 것들이 없어서 그런 것이리라.
사랑이라는 감정에는 계기가 없다. 드라마에서 황 용식이가 그랬다. "지는유, '신중'보다는 '전념'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유. 긴가민가 간만보다는 옹산 다이아, 동백 씨 놓쳐유. 기다 싶으면 잡아야쥬!" 황 용식이는 동백이를 사랑하는 일을 좀처럼 포기하지 않는다. 애초에 포기라는 단어가 없는 사람처럼 전념한다. 황 용식이처럼 좀 덜 신중하게 전념해도 되는 것들을 찾아서 시작하면 의지박약 같은 일이 있을 수가 없다. 지도 재밌어서 하는거겠지.
그래서 나는 지금 전념하고 있는 일이 있는가?
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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